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에 빠질 것이요
어느 목사님이 40일 금식기도를 하던 중 38일째 되는 날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너는 네가 판 함정에 빠져 있다.”그리하여 그는 그 함정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자기가 팠고 자기가 빠진 그 함정이란 ‘자기 생각으로 사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자기 생각으로 산다는 것은 사탄의 종노릇하는 것이요, 마귀에게 정복당하여 사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양이다. 양은 목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목자의 음성을 따라가는 존재여야 한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생각대로, 자기의 지식대로, 자기의 방법대로 살려한다면 자기가 판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자녀 된 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을 믿지 말고 내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자기가 기도한 것을 의지해야 한다. 나를 신뢰하지 말고 나를 세우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사람처럼 변화무쌍하고 요동하는 존재가 또 어디 있을까? 왜 변화무쌍하고 요동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자기 생각을 믿기 때문이다.
어느 교회의 집사님은 50대 후반인데 남편이 알코올 중독자이다. 3년 전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를 다니게 된 이유는 두 가지 였다. 하나는 영혼의 안식을 누리고 싶은 것이었고, 또 하나는 남편의 주벽과 폭력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녀가 결혼할 때에 시댁에서 친정부모에게 사위될 사람의 상태와 신분을 속였다. 일자무식에 직업도 없으며 무일푼인 그를 한국전력에 근무한다고 하여 순진한 친정부모가 서둘러 결혼을 시켰다. 결혼 직후 그 모든 것들이 거짓임을 알게 되었으나 이미 결혼식을 마쳤으므로 당시에는 그냥 살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지금 시대라면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라도 이혼을 했을 것이다. 신혼시절부터 남편은 자기의 콤플렉스를 무마시키려고 그러는지 아내를 폭력으로 잡으려 했다. 남편은 술을 마시면 폭력을 휘둘렀다. 그들의 가정은 지옥이었다. 그런 속에서도 아들과 딸은 장성하여 도시에 나가 살지만 그런 아버지에게 실망하고 질려 아예 아버지하고는 대화도 꺼린다. 어머니에게 차라리 이혼하고 편하게 살라고 말하곤 한다.
30년이 되도록 고통의 삶을 살다가 50대 중반에 영혼의 안위를 얻고자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은 하나님의 말씀에 위로를 얻었다. 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남편의 알코올 중독과 폭력을 그치게 해달라고 눈물의 기도도 많이 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났건만 남편의 주벽과 폭력은 그칠 기색이 없었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후 초창기에는 남편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강하여 한동안 잘 참아냈다. 그러나 며칠 전에 또 다시 남편의 폭력과 폭언에 참을 수 없어 마주 대하여 폭언과 폭력으로 맞서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자신의 추한 모습에 실망하여 교회를 다닐 수 없다고 판단했다. 3주 동안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교회를 나가든 안 나가든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자신의 육신의 변화 없음에 실망하는 것은 영적 자살이다. 기독교는 육신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육신은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다면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양심에 찔려, 믿음의 양심에 찔려 기도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교만이다. 기독교는 변화되어서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교회를 다니는 것이다. 인간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다. 우리의 육신의 모습이 추하고 형편없을지라도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의 사람이요, 믿음의 삶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3하)”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간혹 우리는 우리가 대단한 존재인양 여기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행위가 완전하여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의인으로 인정해주리라는 착각에 빠진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사람은 다 거짓됨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우리 마음속에는 여전히 죄악의 찌꺼기가 가라앉아 있을 뿐이지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구정물의 윗물이 맑아보일지라도 그 속에는 온갖 찌꺼기가 가라앉아 있으므로 누군가가 한 번만 휘저으면 그것들이 다 드러나 더러워지듯이. 내가 예수를 믿는다하여 나의 인격이 굉장히 성숙하여진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를 믿지 말고 오늘도 주의 말씀으로 나를 정복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한다. 언제 나는 무너질지 모르는 존재이니 자기 자신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정복당하여 사는 것이 은혜의 삶이다.
대부분의 사람의 마음속은 밴댕이속이고 마음그릇은 간장종지밖에 안 된다. 그러므로 자주 삐치고 시험에 든다. 시험에 들어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안 들린다. 시험 당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면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게 하소서.” 기분 나쁘면, 성질이 나면, 시험에 들면 하나님의 말씀이 안 들려지니까 한 번 빠진 구덩이에 다시 빠지는 것이다.
성경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7)”라고 말한다. 마귀는 자기 생각, 자기 입장을 내세우는 자를 통하여 교회를 무너뜨리는데 명수이다. 내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내 생각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주의 종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열왕기하 5장에는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에 들어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에게 고침을 받으러 온 사건이 나온다. 나아만이 값비싼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엘리사를 찾아온다. 엘리사는 아람의 용사요, 왕의 존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나아만 장군을 극진히 영접하지 않고 수종자를 보내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병이 회복되어 깨끗해지리라고 말한다. 이에 나아만은 실망하고 크게 노하여 말한다.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와서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환처 위에 흔들어 고칠까 하였도다.”
정말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자기의 병이 낫기를 바라고 왔으면 그의 입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되련만, 사람은 자기 생각을 더 의존하는 경향이 많다.그러나 나아만은 훌륭한 종들을 두었다. 그의 종들이 엘리사의 말대로 한 번 시행해보라고 강권하였다. 그리하여 나아만은 마지못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병이 나아 깨끗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우리의 삶에는 항상 두 가지 선택의 길이 놓여 있다. 내 생각대로 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인가. 사탄은 지금도 우리의 귀에 속삭인다.“네 생각대로 해.”
사탄은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를 이러한 속삭임으로 무너뜨렸듯이 오늘날도 끊임없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 생각대로 하라고 속삭인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의 옳은 소견대로 하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전적 부패한 인간의 소견은 옳은 길보다는 그른 길로 흐르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문제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한지를 찾아 그 속에서 해결책을 찾아가노라면 반드시 옳은 길이 나타날 것이다.
출처/양애옥 사모 (정읍시 옹동면 비봉리 산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