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공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을 사용했다. 자신의 몸을 먼저 수련하여 가정을 화목하게 만드는 게 세상을 다스리는 첩경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원만한 가정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은 월간 《아버지》에 기고한 글들을 묶은 책으로 부부 상호간의 이해를 강조하면서도 특히 남편이 아내에게 해야 할 의무를 소개한다.
▣ 저자 김성묵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나눠주고 싶은 바람을 이루기 위해 고려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했다. 원래는 사학과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그 꿈을 미련 없이 접고 아내를 택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점점 힘들었다. 대학교 캠퍼스 커플로 만나 열렬히 사랑하다가 결혼했지만 도무지 행복하지 않았다. 아내를 이해할 수 없어서 밖으로만 돌다가 “너희를 준비한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니냐!”라는 하나님 음성을 듣고 그동안의 상처를 싸매고 치료했다. 이를 계기로 가정 사역에 몸을 던졌다. 1995년에 개설된 아버지학교 1기를 수료하면서 가정 사역의 방향성을 찾았다. ‘아버지가 변해야 가정이 변한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아버지학교 운동에 헌신했다. 현재 (사)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이사장 하용조 목사)의 상임이사, 국제운동본부장으로 한국을 포함 전 세계 40개국 250여 개의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아버지학교를 이끌고 있다. 한 달에 두 번씩 해외로 가는 비행기를 탈 정도로 일정이 빡빡한 아버지학교의 명강사다. 저서로는 『아버지 사랑합니다』, 『고슴도치 부부의 사랑』, 『좋은 아빠되기 프로젝트』, 『그 남자가 원하는 여자 그 여자가 원하는 남자』가 있다.
▣ Short Summary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해결책으로 하루에 하나씩 3주 프로그램을 실천하면서 좋은 남편, 존경 받는 남편으로 거듭나는 길을 제시한다.
많은 부부들이 성격 차이 때문에 싸운다고 말한다. 정말 성격 차이 때문에 싸우고 심지어 이혼하는 걸까? 저자인 김성묵 장로는 오랜 경험을 통해 깨달은 사실이 있다. 삶의 문제는 성격의 문제라기보다 오히려 성품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성품을 형성하는 것에는 성격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질과 문화, 교육, 습관, 믿음, 환경, 상처 등이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사실에 있다. 남편은 아내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가정 경영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성품을 계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품의 계발은 나를 알고, 너를 알고, 우리를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변화와 성숙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라는 말이 있다. 머리가 먼저 깨어 있어야 한다. 머리가 올바른 기능을 발휘할 때, 몸이 잘 움직일 수 있다. 몸은 두 개지만 하나의 인생을 사는 것, 그것이 결혼생활이다. 가정은 인생의 베이스캠프이다. 가정이 흔들리면 인생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가정은 국가의 심장이다. 심장에 이상이 생기면 몸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처럼 가정이 무너지면 국가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이 책을 통해서 이 땅의 남자들이 존경 받는 남편이 되길 바란다. 존경 받는 남편이 꾸리는 가정은 행복할 것이고 더불어 사회도 건강해질 것이다. 많은 아내들이 이 책을 읽고 남편들을 이해하고 도와주었으면 한다. 남편은 아내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루라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3-24).
젊은 부부들을 위한 부부 세미나에서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라고 말하면 젊은 아내들은 만면의 웃음을 지으며 남편을 쿡 찌르고는 “거봐, 내 말이 맞지? 모시지 말라는 말이야” 합니다. 그러나 떠나라는 말은 단순한 지리적 떠남의 의미 이상입니다. 나는 늘 결혼예비학교에서 예비부부들에게 당부하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결혼하기 전에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의 원가족, 특히 아버지, 어머니와 화해하고 떠나십시오. 그것이 훗날 여러분의 결혼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려면 떠남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떠남 이전에는 만남이 있으며, 건강한 만남이 있어야 건강한 떠남이 있고, 건강한 떠남이 있어야 또 새로운 만남이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떠나기 전에는 반드시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인 원가족과의 관계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떠남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문화적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만나 제일 먼저 충돌하는 것은 문화입니다. 문화의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물론 두 사람이 의논해서 서로 맞춰 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지켜 온 전통과 문화를 떠나 두 사람만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정서적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원가족과의 만남이 건강하지 못해 상처가 많은 경우 결혼 후에도 그 상처를 안고 가게 됩니다. 따라서 반드시 결혼 전 ‘나의 자화상이 어떤가?’를 돌아보고 내 안에 분노가 숨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정리되지 않으면 그 분노가 아내에게로, 자녀에게로 흘러가게 마련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란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과거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셋째는 경제적인 떠남입니다. 경제적으로 떠나야 진정한 떠남이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부모에게 의존하지 말고 두 사람이 힘을 모아 살아가야 합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부모의 지원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부모님 역시 출가한 자식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더라도 대가를 바라거나 사사건건 간섭하려 들면 안 됩니다. 떠남이 건강해야 건강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떠나고 떠나보내야 합니다.
효도도 부부 중심의 효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효도는 한과 상처를 남기고 그 한과 상처는 대물림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학교를 할 때 만났던 어느 형제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불쌍한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드려야 한다는 다짐을 하면서 자랐고 결혼 후에도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어머니에게 아들은 곧 남편이었고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한테 며느리는 아들에게 짐이 되는 존재로 비쳤습니다. 아들을 극진히 섬기지 않는 며느리가 못마땅해 잔소리가 늘기 시작했고, 며느리는 날이 갈수록 말수가 줄고 얼굴에 그늘이 짙어 갔습니다. 남편에게 호소해 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당신이 좀 참아! 어머니는 불쌍한 분이잖아. 우리가 잘해 드려야지”가 고작이었습니다. 결국 아내는 병이 깊어져 정신과 치료까지 받는 지경이 이르렀고, 이혼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남편이 아버지학교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무심한 남편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길로 그는 아내를 찾아가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도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저희 가정 일은 아내와 의논할 것입니다. 어머니가 그 점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저는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한 여자의 남편이고 두 아이들의 아버지입니다. 어머니의 바람은 아들인 제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잖아요. 저 역시 어머니를 이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아내가 필요합니다. 어머니, 저를 좀 도와주세요.”
그 후 갈등의 폭은 줄어들었지만 아내의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자 집 주변에 조그마한 아파트를 빌려 어머니를 거기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어머니학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고 어머니의 상처,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회복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가족에는 세 가지의 체계가 있습니다. 부모, 부부 그리고 자녀입니다. 이 세 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체계, 기본이 되는 체계는 부부관계입니다. 부부가 하나되어야만 모든 체계가 안정될 수 있습니다. 부부가 하나되어 부모를 공경하는 것, 그것이 진짜 효도입니다. 부부가 하나되어 자녀를 양육하는 것, 그것이 진짜 자녀 양육입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먼저 원가족을 떠나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초점을 맞추고 두 사람의 가정을 일궈 가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자녀들을 아름답게 떠나보낼 수 있습니다. 건강하게 떠남이 이뤄진 자녀는 건강한 만남을 이뤄 갈 것입니다.
아내에게 공감해 주라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엡 4:2).
아내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은 “여보, 힘들지?”, “여보, 고마워!”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아내는 남편이 공감해 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편은 공감해 주기보다 해결책부터 제시하려고 듭니다. 해결사의 기질을 타고났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여보, 이야기 좀 해요” 하면 대뜸 “무슨 문제 있어?”부터 물어 봅니다. 그러나 가만히 부드럽게 아내를 응시하면서 아내의 말에 귀 기울여 주고, 맞장구쳐 주면서 그 마음을 읽어 주는 것, 그것이 공감입니다.
많은 가정에서 고부간의 갈등이 있다고 합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사는 존재이므로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 가장 힘든데, 그중에서도 고부관계가 특히 어려운 듯합니다. 이 고부관계를 더 어렵게 만드는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남편입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불러 “오늘 네 처가 나한테 이러저러 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말하면 아들은 어머니 말만 듣고 아내에게 가서 “당신이 어떻게 어머니한테 그럴 수 있어? 당신이 잘못했으니 어머니한테 가서 용서를 빌어!” 합니다.
그러나 이때 “알았어요. 제가 잘못했으니 가서 용서를 빌게요” 하는 아내는 아무도 없습니다. “사실은 이러저러해서 이러저러하게 된 거예요” 하고 아내가 항변하면 남편은 아내 말이 옳게 여겨져서 어머니한테 가서 “어머니가 이러저러한 점은 잘못했네요” 하며 시비를 따지고 듭니다. 그러면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럴 수 있니? 그 여우같은 것한테 홀려서 어미도 안 보이는 거로구나” 하며 어머니는 역정을 내십니다.
어머니나 아내나 모두 여자입니다. 여자는 공감을 원합니다. “어머니, 힘드시죠? 제가 더 신경을 쓸게요. 아내가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도 아이 같아요. 그렇지요?” 하고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 드렸다면 어머니의 마음이 녹아 내렸을 것입니다. “여보, 힘들지? 아들인 나도 잘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는데 뭐. 그래도 당신 정말 잘 참는다. 난 그 점이 항상 존경스러워. 당신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하고 아내의 손을 꼭 잡아 주거나 안아 주었다면 아내는 더 이상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아내들은 오늘도 남편의 공감을 얻지 못해 슬퍼합니다. 내게 상담을 요청한 40대 여성의 말은 바로 당신 아내의 말일 수 있습니다. “전 낯선 남자와 사는 것 같아요. 정말 남편인지, 남의 편인지 모르겠어요.”
아내가 원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 공감입니다. 먼저 충분히 공감한 후 해결책을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이 최상의 방법입니다.
둘만의 시간을 자주 가지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
성취지향적이고 과업지향적인 남자들은 결혼도 하나의 과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애할 때는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거리가 문제 되지 않고 바쁜 것도 문제 되지 않으며 피곤한 것도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결혼식을 올리고 나면 ‘드디어 과업을 완수했다’, 다시 말해 ‘이제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여자는 결혼식을 새로운 출발을 위한 관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은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한 사람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니 여기서 갈등이 생깁니다. 흔히 우리는 갈등이 있으면 잘못 만났다고 생각하나, 갈등이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 갈등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하는 부부가 행복한 부부입니다.
결혼은 절대 과업 완수가 아닙니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의 시작인 것입니다. 아내는 이 새로운 시작을 위해 남편과 특별한 관계를 맺기 원합니다. 특별한 관계란 둘만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생명을 나눈다는 의미입니다. 당신이 가장 우선순위라는 의미입니다. 당신이 아주 특별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아내들은 결혼한 후에도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어느 아버지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특별히 부부를 함께 초청해서 아버지학교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날 젊은 부인이 나와서는 자기가 꼭 할 이야기가 있으니 시간을 좀 달라면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여러분, 제 남편은 목사인데다 참 부드러운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존경하고 좋아하지요. 그러나 전 그런 남편 때문에 외로웠습니다. 남편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늘 늦은 밤이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컴퓨터에 앉아 설교 준비를 하거나, 전화로 교우들과 상담하느라 저는 남편에게 말 한마디도 붙이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가끔 단둘이 산책을 하자거나 단 3분만이라도 이야기하자고 해도 남편은 시간이 없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난 뭘까, 남편은 날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때면 남편이 너무나 야속하고 미웠습니다. 그럼에도 남편은 사람들에게서 ‘천사’라고 불리며 칭찬을 받았지요. 저는 그럴수록 너무나 외롭고 비참했습니다. 낯선 남자가 ‘같이 가자’ 하면 따라 나서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요. 이번 아버지학교에서 남편에게 어떤 변화가 없다면 정말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며칠 동안 거의 밤을 새우면서 둘이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남편은 용서를 구하고, 전 그런 남편을 이해했어요. 이제 다시 시작할 거예요.”
어떤 분은 아예 일정을 잡을 때, 아내를 위한 시간을 가장 먼저 잡아놓는다고 합니다. 그것은 ‘당신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겠지요. 아내에게 데이트를 신청하십시오. 데이트를 신청하는 쪽지나 편지를 쓰십시오. 둘만의 시간이라는 것과 아무리 바빠도 꼭 시간을 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십시오. 처음에는 한 시간만 데이트하십시오.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는 것은 미루십시오. 평소 대화를 나누지 않다가 하게 되면 쑥스럽기도 하고, 못했던 말을 다 하려니 어떨 땐 싸울 수도 있습니다.
식사를 맛있게 하고 조용한 카페에 가십시오. 오늘은 들어만 달라고 하십시오. 그동안 잘못된 대화로 가정을 이끌어 온 것에 대한 사과와 이제 새로이 시작하겠노라는 다짐의 말과 아내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부탁의 말을 꼭 하십시오. 이야기를 하려다 보면 속상한 말도 하게 마련인데, 그러면 데이트를 망치게 됩니다. 부정적인 말은 금물입니다. 아내에 대해서는 칭찬 외에는 하지 말고 자신에 대해서만 말하십시오. 긍정적인 시간으로 이끄십시오. 부정적인 말은 다음으로 미루십시오. 진정한 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데이트를 위해 기도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아내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라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잠 15:23).
“내가 당신 학생이야? 왜 날 가르치려고 해!” 내가 아내에게 많이 하는 말이었습니다. 아내는 중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나 잘 가르치지, 어째서 집에서도 가르치려 드는지 심사가 뒤틀리곤 했습니다. 아내는 제발 그만하라고 해도 그것이 마치 자신의 사명이라도 되는 듯이 정말 목숨을 걸고 잔소리를 늘어놓았습니다. “여보, 내가 누구한테 이런 말을 해주겠어요? 다 당신을 위해서 하는 얘기잖아요.” 그래도 내가 얼굴을 돌리고 입을 굳게 다물자, 아내는 “당신 도대체 왜 그래요? 애들처럼!” 하며 따지고 들었고, 나는 ‘이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구나’ 싶어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때마다 아내의 가슴에도 멍이 들었고 우리 부부관계는 급속도로 나빠졌습니다.
부부관계가 어려워지는 위기의 과정을 보통 다음 네 단계로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비난의 단계’, 둘째는 ‘경멸의 단계’, 셋째는 네 탓 내 탓을 따지는 ‘방어의 단계’이며, 마지막으로 ‘벽을 쌓는 단계’입니다. 내 입에서는 급기야 “너 만나서 내 인생에 잘 되는 게 없다”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나는 물론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는데, 아내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더군요. 그렇게 네 탓 내 탓하다가 벽을 쌓아 갔고, 우리 두 사람의 관계는 위기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남편들은 아내의 충고를 ‘잔소리한다’, ‘가르친다’, ‘비난한다’, ‘지적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내의 충고는 염려와 배려와 관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나는 요즘에 와서야 아내가 충고를 하면 “고마워, 여보!”라고 말합니다. 아내의 충고는 남편을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노래이며, 거룩한 잔소리입니다. 특별히 돕는 배필로 지어주신 아내들에게 하나님은 뛰어난 직관력을 주셨습니다. 좌뇌와 우뇌가 잘 연결되어 있는 아내는 상황 판단이 의외로 빠릅니다. 아내의 조언과 충고를 잘 들어주십시오. 그곳에 행복이 있습니다.
아내와의 성생활을 점검하라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잠 5:18-19).
미국의 어느 신문에 남편이 게으른 아내 때문에 상담한 내용이 게재되었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요리는 물론 청소도 할 줄 모르는 게으름뱅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유일하게 잘하는 것은 성생활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글이 나간 다음 주에 상담자가 아닌 독자의 글이 실렸습니다. “당신은 행복한 줄 아시오. 만일 내 아내가 그랬다면 나는 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더 벌어 아내를 위해 가정부를 두고 아내와 행복하게 성생활을 즐겼을 것이오. 나는 솔직히 당신이 부럽소.”
이렇듯 남편들에게 성생활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아내들은 성 그 자체보다는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지요. 남자들에게 ‘성생활’이란 곧 ‘성행위’를 의미합니다. 반면에 여자의 경우, 성생활의 80%는 정서적 친밀감, 즉 애정 표현입니다. 청각지향적이고 촉각지향적인 여자는 부드럽게 눈을 마주치고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며 따뜻하게 포옹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남편들은 흔히 그런 애정 표현을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무시하곤 합니다. 그러니 애정 표현이 없는 성행위만 요구하는 남편과 아내는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부부간에는 성에 대해 솔직하게 대화를 주고받아야 합니다. 어떤 때 가장 좋았는지, 어떤 때 기분이 나빴는지 등을 솔직하게 말하며 더 나은 성생활을 가지려 노력해야 합니다.
부부생활을 윤택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를 들라면, 나는 우정과 성생활을 꼽겠습니다. 우정은 친구가 되어 간다는 의미입니다. 부부는 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친구보다 더 정서적으로 친밀하고 영적으로도 깊어질 수 있는 것은 성적인 연합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 있는 부부의 90%는 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정서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성에도 문제가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에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정서적으로도 문제가 생깁니다. 아내와의 성생활을 점검해 보십시오. 부부생활은 영적인 연합, 정서적인 연합, 육체적인 연합을 통해서 하나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자녀 양육에 적극 참여하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남편들에게 밖에 나가 돈을 벌어 가정살림을 책임지는 역할을 강조해 왔습니다. 반면에 아내에게는 아이를 낳고 기르고 양육하며 가사를 돌보는 역할을 강조했지요. 그러나 산업화 이후 가정의 그림이 크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남에 따라 아내의 역할은 가정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남편과 함께 직장에 나가 가정의 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 아내의 역할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사회 변화에 따라 가정의 판도가 달라졌다면 부부의 역할에도 변화가 있어야 마땅합니다.
특히 자녀 양육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책임져야 합니다. 자녀 양육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 육체적 건강을 돌보아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도록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양질의 음식을 제공한다면 자녀들이 적당한 운동을 통해 몸을 단련하도록 인도하는 일은 아버지가 감당해야 합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틈을 내어 아이들과 운동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중에 맺어진 친밀감은 자녀들이 자라며 성적 정체성을 확립하게 도와주고 친구 관계에서 신뢰성을 갖게 하며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해 나가는 양분이 됩니다. 자녀 양육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둘째, 정신적 양육입니다. 정신적 양육의 핵심은 자녀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 그래서 나는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확신하는 자녀는 가치감이 분명하고, 도덕성이 높으며, 성 정체성을 바르게 확립합니다. 가족관계가 원만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분명한 소속감을 가진 자녀는 사회성이 높고 권위에 잘 적응하는 사회인으로 성장해 갑니다. 또한 작은 일에서 성공한 기억들, 즉 부모와 함께 일하면서 얻은 칭찬, 격려, 인정이 필요합니다. 이런 자녀는 자신감이 높아 아무리 사나운 파도가 덮쳐 와도 도망가기보다 헤쳐 나갈 용기를 갖게 됩니다. 가치감, 소속감, 자신감 이 세 가지가 건강한 인격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결정적 요소입니다.
셋째, 영적인 양육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건강을 돌보는 일입니다. 이것이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답게 사는 데 가장 필요한 요소입니다. 인간의 실존에 대해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가치관에 대해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가 단순히 생존을 위해 사는가, 아니면 세상적인 성공을 추구하는가, 아니면 초월적인 목적을 위해 사는가에 따라 자녀의 인생관이 달라집니다. 자녀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가슴속에 고성능 카메라가 있어서 부모의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내면화시키고 자신의 자아상을 확립해 갑니다. 특별히 이때 아버지의 영향력이 결정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최근 미국 카네기재단에서 성공의 요인을 분석한 결과, 관계를 맺는 능력이 85%나 차지한 반면 지적 능력은 15%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이 관계를 맺는 능력은 아버지가 자녀 양육에 적극 참여할 때 강화됩니다. 다시 말해 아버지가 자녀에게 관심을 갖고 육체적, 정신적, 영적 양육에 힘쓸 때 자녀의 미래는 밝은 것입니다.
한편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며, 아내가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여 자녀에게 아버지의 권위를 긍정적으로 경험시키는 것입니다. 사랑과 존중, 배려, 권위는 인간이 관계를 맺는 데 가장 소중한 가치들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권위를 인정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녀들 앞에서 어머니의 자녀 양육 태도나 아버지의 삶의 태도를 비난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부부간에 누가 야단을 치는 역할을 할 것인지를 의논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정마다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아내가 야단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아내가 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므로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야단친 후에 더 잘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방향을 제시하고 경계를 정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남편이 자녀 양육에 적극 참여할 때 아내는 큰 부담에서 벗어나 더 안정감 있게 양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내는 자신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는 자녀를 남편이 잘 돌볼 때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낍니다.
아내를 칭찬하라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는 그의 어머니의 외딸이요 그 낳은 자가 귀중하게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비와 후궁들도 그를 칭찬하는구나”(아 6:9).
사람은 누구나 칭찬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입에 발린 칭찬은 오히려 역효과를 냅니다. 칭찬은 구체적으로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김치찌개 일품이었어요. 간도 딱 맞고 돼지고기도 적절하게 들어가서 배합이 아주 굿이었어요. 역시 당신은 타고난 요리사야” 하며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입맛이 없다가도 당신이 해준 김치찌개를 먹으면 입맛이 돌아온다니까. 당신의 손맛에 내가 살맛이 나” 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칭찬이 되겠지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소유물에 대한 칭찬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각이나 재능 혹은 삶의 태도 등에 대한 칭찬을 받으면 더 좋아합니다. 또한 이런 칭찬은 아내 본인에게 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아내의 원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하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특히 아내의 원가족에게 아내를 은근히 칭찬하는 것은 아내의 원가족을 기쁘게 해서 더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제 아내의 음식 만드는 솜씨가 꼭 어머님을 닮았나 봐요. 저희 집에 놀러 오는 친구들마다 장가 잘 갔다고 칭찬이 자자해요”라든가 “아내가 어머님을 닮아서 그렇게 마음 씀씀이가 자상하고 따뜻한가 봐요” 하는 칭찬은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버지학교에서는 ‘아내를 사랑하는 이유 20가지’를 써오라는 숙제를 내줍니다. 사실 이것은 아내를 칭찬하라는 숙제입니다. 아내의 단점을 보지 말고 장점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달랑 두 가지만 써오신 분도 있습니다. 그 내용도 ‘첫째 밥 잘하는 것, 둘째 내가 화를 내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아내가 얼마나 힘들까 충분히 짐작됩니다. 우리는 죄성 때문에 남을 칭찬하는 데 인색합니다. 특별히 한국 남자들은 다른 사람 앞에서 아내나 자녀를 칭찬하는 것을 팔불출이라며 금기시합니다. 칭찬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비하하는 것을 예의로 여깁니다. 어떤 분은 “사모님이 참 미인이시네요” 했더니 “다 화장발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하지요.
칭찬을 잘 하면 자신도 행복하지만 상대방도 행복하게 만드는 공동의 승리를 안겨줍니다. 칭찬을 하다 보면 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되어 우리는 하나라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칭찬을 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칭찬을 한 뒤에 비난으로 종결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당신은 음식 솜씨는 좋은데 말이야, 집이 지저분해”라든지 “집안 살림은 잘하는데, 애들 교육은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처럼 용두사미의 칭찬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칭찬은 칭찬으로 끝내야 합니다. 부부 상담가인 존 카트맨 박사는 비난이나 무시와 같은 부정적인 말을 한 번 했다면 격려나 칭찬과 같은 긍정적인 말을 적어도 다섯 번 이상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장하는 마법의 기술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라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8).
결혼 후 갈등이 생기면 ‘혹시 우린 잘못된 만남일까?’ 하며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부부생활은 서로를 얼마나 열정적으로 사랑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갈등을 잘 해결해 나가느냐가 관건입니다. 사소하든 심각한 것이든 부부가 다툼을 하고 나면 당연히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상한 마음과 감정은 제대로 해소되지 못하면 억압된 채 무의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무의식으로 들어간 상한 마음들은 마치 암세포처럼 변이를 일으키는가 하면 자라서 자아를 병들게 하고 관계를 파괴시킵니다. 따라서 부부간에 갈등이 일어났을 때 해결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관계를 상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다툼 끝에는 반드시 화해가 있어야 하며, 이 화해를 위해서는 피스 메이커(peace-maker)가 필요합니다.
피스 메이커란 다른 사람들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고난을 감수하는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들이지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할까요? 바로 남편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 그것은 남편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화평하게 하는 자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무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는 일이었습니다. 흔히 남자는 자존심 하나 가지고 산다면서 아내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 때까지 버팁니다. 심지어 이번 기회에 아내의 버릇을 고치겠다고 마음먹기도 합니다. 모두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말입니다. 나 역시 젊었을 때 아내의 버릇을 고쳐 놓으리라 벼르며 거의 석 달 동안이나 대화를 거부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버릇이 고쳐지기는커녕 아내의 상처만 깊어졌습니다. 그뿐입니까. 그때까지 갖고 있던 나에 대한 아내의 존경심마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나대로 더 교만해지고 왜곡된 삶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십자가의 사건을 경험한 후 나는 내가 화해자가 되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매일 죽는 것, 즉 자기를 부인하고 자존심과 이기심을 내려놓는 것이 기도임을 깨달았습니다. 남편들이여, 아내와 다툰 후에는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기 바랍니다. 아내는 남편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 아름다운 여성, 하나님의 형상으로 꽃피어 날 것입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의 권위를 인정할 것이며, 남편에게 기쁨으로 순종할 것입니다. 죽음이 있는 곳에 부활이 있습니다. 남편은 권위 있는 제사장으로, 목자로 거듭 태어날 것입니다.
궁극적인 것은 용서와 사랑입니다.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김성묵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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